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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의 독립운동 역사 체험하는 뜻깊은 답사

입력 : 2017-06-15 01:41:00
수정 : 0000-00-00 00:00:00

 
파주의 독립운동 역사 체험하는 뜻깊은 답사
 
파주시민참여연대, 파주 독립운동의 역사 발굴해 답사 코스로 개발해

▲ 광탄면에 있는 파주 3.1운동 발상비

잊혀진 파주독립운동 역사의 복원

지난 6월 3일(토), 파주시민참여연대는 ‘3.1운동 파주역사올레’를 진행했다. 교하초등학교를 시작으로, 정태진 기념관, 광탄 3.1만세운동 발상비, 심상각 선생 묘소 등을 방문하고, 3.1만세운동 때 우리의 선조들이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며 나아갔던 파주 삼릉 길을 걸으며 역사의 숨결을 느껴보는 과정으로 진행되었다. 이날 답사에는 파주 시민 30여 명이 함께했다.

이 역사 답사에는 두 가지 큰 의미가 있었다. 첫째, ‘잊혀진 파주 독립운동 역사의 복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파주시민참여연대는 그간 파주에서 독립운동의 역사를 발굴해 왔다. 파주 광복회를 만나는 것은 물론이고, 임명애 열사와 심상각 선생의 후손 등을 만나 잊혀진 역사를 복원했다.

 

임명애열사는 교하공립보통학교 100여명과 독립만세 시위

특히 임명애 열사는 1919년 3월 10일 교하공립보통학교(현 교하초등학교)에서 이 학교 학생 백여 명과 독립만세 시위를 전개했다. 이는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의 열기가 파주까지 전해져, 파주에서 열린 최초의 만세 운동이었다. 그런데 이 역사적인 사건은 아직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다. 교하초등학교는 백 년이 넘은 학교로 학교 안에 역사관이 있으나, 이 중요한 독립운동의 장면을 기억하고 있지 않다. 이뿐 아니다. 이 역사를 공동체의 기억으로 기념하는 비조차도 없다. 이는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파주시민참여연대는 지역의 공식 기록으로 남지 않은 역사를 복원하는 뜻깊은 일을 해냈다.

 

▲ 3.1운동 파주역사올레에 참여한 시민들이 파주에서 최초로 만세 운동이 열린 교하초등학교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고 있다.

700여명 시위가 경찰발포로 해산되고 임명애열사 체포 구속

임명애 열사는 이후에도 구당리, 당하리 일대의 주민들에게 독립만세 시위에 참여를 요청하는 격문을 뿌리고, 3월 27일에는 7백여 명의 시위 군중을 이끌고 면사무소로 가서 일제의 지배에 강하게 항의했다. 이날 시위는 경찰의 발포로 해산되었고, 임명애 열사는 결국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갇혔다.

 

만삭의 몸인 임명애 열사를 유관순 열사가 도와

임명애 열사는 서대문형무소에서 유관순 열사와 같은 방인 8호방에 갇혔다. 만삭의 몸으로 옥고를 치러 그와 관련한 일화가 남아 있다. 유관순 열사가 갓난아이 젖이 모자란 임명애 열사에게 밥을 덜어 주기도 하고, 오줌 싼 기저귀를 손으로 짜서 허리춤에 감아 체온으로 말려 주었다는 등의 가슴 찡한 일화가 전해진다. 유관순 열사는 감옥에서 순국하였고, 임명애 열사는 유관순의 죽음을 목격한 증인이 되었다.

 

▲ 정태진 기념관 앞에서 설명을 듣고 있다. 정태진 선생은 독립운동가이자 한글학자다.

파주시민참여연대 파주독립운동 역사 답사 코스 개발 의미

둘째, 파주 독립운동의 역사를 답사 코스로 개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는 혼자서 독립운동에 관한 역사를 알아가는 행위와는 다르다. 역사 코스를 함께 답사하는 일은 지역에 대한 공동의 체험과 기억을 남긴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지역의 공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구성할 것인가 하는 물음을 남긴다.

 

조선어학회 주동 정태진 선생의 기념관이 중앙도서관 옆에 있어

국사 교과서에도 나오는 조선어학회 사건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일제에 의해 이 사건의 주동 인물로 체포된 정태진 선생의 기념관이 파주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파주 시민이 많다. 기념관을 방문해 보면, 우리가 사는 파주에서 독립운동의 역사가 더욱 가깝게 느껴지게 된다. 파주중앙도서관 옆에 있는 기념관을 방문하고 정태진 선생의 활동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독립운동가이자 한글학자인 정태진 선생은 파주시 금릉동 출생으로 미국 컬럼비아 대학원을 나왔고, 귀국해서 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조선어학회의 한글사전편찬위원이 되었다. 그러다 일제에 의해 조선어학회 사건의 주동 인물로 체포되어 광복될 때까지 형무소에 갇혔다. 이후 문교부 장관으로 초빙되었으나, 거절하고 한글학회에서 한글사전 편찬사업에 힘썼다.


▲ 아파트 숲 사이에 남아 있는 정태진 기념관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심상각 선생의 묘는 광탄면에

그리고 심상각 선생은 1919년 3월 27일 파주군의 독립만세 시위를 주도했다. 뿐만 아니라 파주시 최대 규모의 만세운동을 만들었고, 이후 중국 상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광탄면 신산리에 선생의 묘소가 있다. 묘소에는 건국훈장이 새겨져 있으나, 그곳까지 올라가는 길 앞에는 알림판조차 없다. 독립운동에 대한 대우가 씁쓸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기억의 공간을 어떻게 남기고 가꿀 것인지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다.

이날 답사에서 겪고 느낀 공동의 체험, 기억, 물음은 천천히 그러나 깊게 앞으로 지역 공동체를 구성하는 힘이 될 것이다. 역사가 단지 종이 위의 기록이 아니라 공동체의 기억이 될 때 세상을 움직이는 동력으로 작동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의미가 매우 큰 답사였다.

이번 답사는 파주시민참여연대에서 발굴하고 개발해서 진행하는 첫 파주역사올레 행사였다. 파주시민참여연대는 앞으로도 역사 답사 코스를 개발해 시민들과 함께할 예정이다. 7월에는 한국전쟁을 주제로 파주에 남은 기록의 조각을 공동체의 기억으로 승화시킬 것이다. 역사를 기억하는 공동체, 그럼으로써 새로운 미래를 창조해 나가는 파주시민참여연대에 파주 시민의 적극적인 관심과 후원을 보낼 필요가 있어 보인다.


▲ 파주시 최대 규모의 만세 시위를 이끈 심상각 선생 묘소. 건국훈장이 새겨져 있다

글 사진 자유기고가 서상일

 

#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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